인문학이 무엇인지, 왜 피하게 되는지, 그럼에도 왜 필요한지 등의 질문을 살펴보며 보통 사람 수준의 눈높이에서 인문학을 소개하는 책으로 상상력, 나 자신의 내면, 행복, 관계, 일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현실의 우리 문제를 깊이 있게 들여다 보는 책이다.
지극히 추천하고 싶은 이 책에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제목일 것이다. 인문학이 처음이라는 설명은 자칫 인문학을 자주 접한 사람이 비하고 싶게 생긴 제목이다. 인문학을 매우 쉽게 설명하고 있으나 수준은 높지 않아 얻을 것은 많지 않다는 뉘앙스가 걸린다.
나름대로 정정하자면 이 책은 인문학의 거의 모든 것을 다룬다. 깊이가 얕지도 않다. 주제가 협소하지도 않다. 인문학의 대가는 아니지만 평소 즐겨 읽는 나로써는 책이 다루는 방대한 스케일에서 심오하고 깊이 있는 해석에 적잖이 놀랐다.
내게 새로이 제목을 지을 권한이 주어진다면 다음과 같은 제목들 중 하나로 표현했을 것이다.
- 우리 모두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 하룻밤에 저절로 읽게되는 인문학
- 인문학 좀 읽어본 사람이 깊이있고 폭넓게 정리할 수 있는 인문학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인문학
은 말 그대로 인간과 인간이 남긴 문화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본 도서에서는 인문학이 다양한 측면에서 매우 유용한 학문임을 여러 사례로 강조하고 있지만 결국 인간의 행복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행복하기 위해선 우리 자신을 잘 알아야 함에도 우리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너무도 모르기 때문에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는데 인류 역사를 통떨어 이 문제를 대표하는 가장 큰 질문이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라는 철학 명제일 것이다.
이 명제는 학교 다닐 때 수도 없이 들었는데 저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처음 들었을 때 쌩뚱맞기 그지 없는 말이라는 것은 모두가 공감했을 것이다. 나 역시 처음 듣고는 이게 무슨 인류 최대의 명제인가 라는 생각부터 우둔해 보이기 까지 하는 필요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허황된 질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며 삶에 애환이 생기고 고민이 늘어나며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안에 답을 찾고자 발버둥 치다보니 인문학도 접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인간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소크라테스의 이 명제가 비로소 대단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소크라테스의 명제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이 책에서는 일반인들의 눈높이에서 출발하여 단계별로 해석하며 추론해가며 그 수준을 높여준다. 저자의 결론이 다다르면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진리의 깊이를 마주하게 되는데 이런 구성 방식이 책의 최고 백미라 칭할만 하다.
예를 들어 책에 소개된 아래 그림은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이라는 명화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심에 있다. 소크라테스를 계승한 이 둘의 손 위치는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왼쪽 플라톤의 손가락은 형이상학적 이데아를 칭한다.
이데아
란 실제로 존재하지만 시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진리와 유사한 개념이다. 마치 2+2=4라는 것도 이데아 중 일부이다.
플라톤은 이데아가 마치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는 듯 하늘 위를 가리킨다. 손가락으로 “그 자체”라는 말을 붙여 이데아를 만든다. 책상에다 “책상 그 자체”라고 하면 책상의 이데아가 되는 것이다.
반면 오른쪽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손바닥을 땅 방향으로 향한다. 분노, 용기 등의 감각은 신체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영혼도 마찬가지이기에 자연과 현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명화 하나만으로도 당시 그리스 시대에 숨은 철학의 진리를 엿볼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저자 덕분이다. 고대의 명화나 철학서에 어떤 어려운 문구가 인용되더라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처음 읽을 때는 이해되지 않겠지만 저자의 해석을 따라가다보면 결국 알게 될 것이다. 어려운 문장을 곱씹어 내재화 할 수 있는 독해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옵션이다.
IT를 전공한 나로써는 저 이데아에서 객체지향프로그래밍이 파생된 것을 알기에 곱씹을 수록 놀라웠다. 인문학 속에 숨은 옛 현인들의 고민이 오늘날의 현실에서 패러다임을 뒤 흔들고 공학과 기술에 큰 영감을 불어넣는다는 것을 다른 이들도 직접 보고 듣고 느낀다면 인문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될 것이다. 스티브잡스의 인문학이 애플 아이폰을 만든다는 뻔한 말이 아니라 스스로 직접 구현해보며 손으로 눈으로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어쨌든 저자 덕분에 물고기와의 이심전심으로 장자
의 철학을 들여다 볼 수 있는가 하면 예로부터 유명한 명화
에 담겨있는 작가의 사상과 시대적 배경을 엿볼 수도 있고 심지어는 이 시대 가장 많은 이들이 즐겨보는 영화
속에 숨어있는 철학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현실의 문제에 맞닿아 있다. 우리가 잠들기 전에 이불킥하거나 살아가는데 너무 힘들어 누군가를 잡고 지혜를 얻고 싶은 그런 문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뛰어난 가치다.
일상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스케일이 큰 질문중에 AI 시대에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
에 대한 문제가 있다. 나는 인문학에서 많은 힌트를 얻었다. AI는 사람의 행동에 의해 수집된 데이터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기에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길에 주목했다.
가보지 않은 길, 새로운 프레임, 생각지도 못한 길이 인간이 가야할 방향이다. 인간의 데이터에 의존하는 AI는 가보지 않은 길을 아직까지는 갈 수 없다.
물론 이 또한 약 인공지능이 주류를 이루는 오늘날의 해법일 것이고 사람과 거의 유사한 강 인공지능이 출현하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 전략일지도 모르겠다. 강 인공지능으로 나아가는 핵심에 오늘날 강화학습이라는 기술이 숨어 있다. 강화학습은 인간이라면 선입견 때문에 내놓지 못하는 해결책을 내어준다.
프로기사들이 주저했던 알파고의 수 - 예를 들면, 3*3 착점 -, 새로운 단백질 분자구조, 새로운 암호 조합 기술 등이 강화학습 덕분에 출현하고 있다. 앞으로 모든 분야의 사람들은 강화학습을 보조도구 삼아 창의성을 높히고 생존 전략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강화학습 또한 한계가 있음에 주목할 필요도 있다. 아직까지는 유한 확정 완전 정보 세계에서만 강점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즉, 바둑과 같은 게임 세계에는 완전한 규칙이 있고 이로 인해 보상과 벌칙으로 AI를 학습시키는데 인간 세상같이 무엇이 득인지 실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세계에는 한계점도 존재한다.
이런 AI의 맹점을 보완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그리고 그 원천은 다양성에 있으며 예로부터 뛰어난 질문과 고민으로 축적된 인문학에 있다 생각한다.
책에서도 소개되었듯 때로는 광기의 역사
에 억압받는 광기 속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러셀의 생각처럼 주 4시간의 노동
으로 확보된 시간의 자유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죽음
을 남의 것이 아닌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버킷리스트를 만들며 삶의 의미와 행복에 대해 고민하며 얻게 될 수 있고, 죽음을 표현한 아래 명화에서 영감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이 다루는 인문학의 범위가 상당하고 약 500p에 육박할 정도로 많은 양을 다루고 있기에 이를 압축해서 내가 최근에 고민했던 AI 시대의 생존 전략이라는 화두에 한정하여 책에서 배운 것들을 접목하며 리뷰를 줄여나갔다.
하지만 책에는 그 외에도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거나, 알 수 없는 불안과 심리학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도 주어진다. 더불어 사람과의 관계, 돈과 노동의 의미, 행복해 지기 위한 길 등 너무도 많은 우리의 문제를 인문학이라는 안경으로 살펴본다.
독자의 고민 중 최소 1개는 이 그물망에 걸릴 것이라 장담한다. 굳이 책장에 고이 모시지 말고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고 생각의 프레임을 전환하는데 이 책을 통해 도움받을 것을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