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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 네트워크
저자 : Andy Kirk
역자 : 조현석
원문 :
Walking the tightrope of visualization criticism
독일에서 열린 SEE 컨퍼런스의 최근 발표에서 데이터 일러스트레이터 Stefanie Posavec은 데이터 시각화(Visualization) 업계에 관한 불만을 말하였습니다.
그녀의 경험은 많은 시각화 블로거들과 시각화에 관련된 사람들이 시각화에는 단 한가지의 옳은 방법만 있다고 믿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이 분야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혼란과 불일치와 모순을 줄 것입니다. 이것은 비판적인 평가에 대한 우리의 "완벽한 것은 없다"라는 생각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데이터 시각화와 인포그래픽 디자인에 관한 커뮤니티에 지원하고, 유지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모두에게 심각한 자극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주류들의 생각에 그러한 생각들이 침투하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Posavec이 말하는 두려움은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부각되지 않는 디자이너들과 비슷한 시각을 갖고 있고 그들의 작품을 공유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지 않아 하는지 아십니까?
이 글에서 저는 시각화업계의 시각에서 벗어나서 제가 지난해 초급 데이터 시각화 교육과정을 진행하면서 느낀점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비평가들의 역할에 대해 Posavec의 생각을 제 수업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을 비교하며 살펴보겠습니다.
시각화 생태계
제 수업에서 얻은 가장 보람있는 경험은 다양한 나라, 문화, 직업 그리고 산업을 대표하는 사람들을 섞어볼 수 있는 기회를 갖은 것입니다. 일반인들과 시간을 보내니 그들이 저에게 배우는 만큼 저도 그들에게서 배우는 경험은 신선한 충격이였습니다. "일반인"이라는 단어가 잘난척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제가 잘났다는건 아닙니다. 지금부터 설명하겠습니다.
당신이 데이터 시각화 같은 영역에 활발한 참여자라면 시간 대부분을 당신의 동료로부터 정보를 듣고 이해하는데 사용할 것입니다. 이것은 몇년동안 공부하고 연습한 엄격한 감정가(교수님들, 작가들, 디자이너들 그리고 블로거들)에게 어떻게 보여질까요?
이 분야는 토론, 지식 교류와 의견 표현의 강도가 높은 분야입니다. 오늘날의 디자인 기법에 가장 통찰력있고 창의적이고 종합적인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세부 사항에 주목해야 하고, 품질 및 평가에 대한 의지와 피드백에 대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배우고 발전하고자 하는 많은 이들에게 실수로 틀림없이 이런 요구들이 숨막히게 하거나 억제 장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제 교육 과정의 주요 관찰은 디자인 우월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가끔 우리를 비난한다 것입니다. 우리는 인기있지만 "쓰레기같은" 많은 인포그래픽을 비판하고 비난하고 그리고 그것이 열등한 사람들의 습작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교육 동안, 저는 그러한 작품들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다양한 시각화 디자인을 평가하기 위해 대표단을 초대했습니다. 저는 종종 제가 좋아하지 않는 작품에 대해 선호한다거나 "좋아한다" 같은 의견을 듣습니다. 이것은 매우 영감을 주는 경험이었습니다.
최상위 계층("거품")과 어울리는 것, 또는 속하는 것의 결과는 세상의 비평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가볍게 즐기는 이들은 제가 말한 일반인들입니다. 그들은 한동안 이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거나 날카로움에 관심을 가졌지만 지금까지는 그렇게 강하지 않았습니다. 엄격한 비평가와는 대조적으로 전문성은 낮지만 보다 완전히 다른 인구통계학과 심리적 상태를 갖은 더 많은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여러가지 의견과 환경과 능력의 비빔밥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그들은 더 공감적이고 참신하면 열린 마음으로 시각화 디자인을 봅니다. 지식(그들이 아닌 우리가 항상 갖고 다니지만 사는데 필요 없는 이론과 원칙)의 부담없이 그들은 정보를 시각화된 형태로 보기 위한 취향과 본능과 활기찬 열정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 중간 영역 외에도 모든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오로지 소비자로서 존재합니다. 그들의 일상적인 역할은 데이터와는 아무 상관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아마 시각화가 뭔지 알지도 못하고 신경쓰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조용히 있지만 매력적인 시각화나 간단한 인포 그래픽을 보고 싶어하는 호기심이 있습니다. 그들은 시각화에 대해 배울 필요도 없고 배우고 싶어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단지 그 결과물을 한 번 볼만큼 충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실제 시각화와 인포그래픽 영역의 구성이며, 우리는 타당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요구의 불합리: 페스트푸드에서 고급 식사로
저명하고 오래된 영화 비평가가 영국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영화를 공정하고 건전하게 판단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깊은 주제 의식과 전문 지식을 보유하고 빈틈없는 분석과 완벽한 추론으로 모든 리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끔 독자나 시청자의 비판에 대해 "다른 의견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틀린 것도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주제의 "전문가"로써 데이터 시각화에 있어 우리의 견해는 외부의 다른 반대 의견보다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닫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항상 시각화 디자인 뒤에 있는 의도를 전부 이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데이터의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이 존재 할 수 있는 많은 다른 상황과 타겟 고객과 형식이 있습니다.
때로는 해석의 정확도가 필수적일 때 데이터 중심의 의사 소통을 생각해 봅니다. 또 다른 경우에는 그들의 행동을 변하게 하고 사람들을 연결하고 감정적인 수준에 더 많은 영향을 위해 데이터의 시각적 표현을 만드는 수도 있습니다. 가끔 우리는 중요한 복잡하고 깊이있는 주제에 노력하고, 더 많은 매력과 장기 대화식 탐험의 경험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다소 가볍고, 재미있는 문제에 대한 사실과 통계를 발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음악, TV, 영화, 음식 같은 다른 창조적인 영역과 비교했을 때, 우리의 취향이 얼마나 충동적이고 일관성 없고 비이성적인지를 설명합니다. 저의 의도가 잘 전해질지 모르지만 가끔 우리는 건강한 가정 요리 대신 정크 푸드나 패스트 푸드 음식을 선호합니다. 우리는 몸에 안좋은 줄 알고 있고, 더 비싸고 한 시간 후에 다시 배고파지는 건 알지만 그래도 먹습니다.
당신은 일반적으로 명작영화나 TV 프로그램과 친하겠지만, 때로는 시끄럽고 쓰레기 같은 특수 효과 블록 버스터는 단지 속임수입니다. 비평가들은 우리가 그것들을 싫어해야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주장하겠지만, 우리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우리는 생각없는 현실 도피를 원합니다. 문학으로 확장해봅시다. 어쩌면 우리 모두 마음을 풍요롭게하기 위해, 셰익스피어나 키츠를 읽으며 우리의 여가 시간을 보내야합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아닙니다. 저도 제가 아닌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음악, 미술, 또는 달리 창의적인 것으로 확장해봅시다. 물론, 많은 다른 요인 (접근성, 시간, 자원, 또래 집단의 영향 등)이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본능적으로 그것들을 섞고 본질을 벗어나려 합니다. 우리가 해야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하는 것은 많은 추종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시각화도 똑같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때로는 악의없는 인포그래픽(소셜미디어에 대한 몇 가지 보고 버리는 사실이나 통계를 보여주거나, 상어에게 물리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것)은 사람들이 심심풀이 같은 것입니다.
visual.ly 같은 갤러리 사이트에 있는 방대한 양의 성공한 작품, 그리고
Column Five 같은 디자인 대행사의 성장과 그리고 현대 타워의 일반적인 현상 인포그래픽들이 이를 뒷바침합니다.
더 많은 중요한 주제들과 뉴욕타임즈 같은 선두 기업의 작품들은 틀림없이 우리가 배우고 중대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주의를 해줘야 되는거 아닌가하고 생각이 들게 하지만 가끔 우리는 해방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각의 조화 필요합니다. 이것이 시각화 생태계이고 우리는 그것의 가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Nathan Yau는 최근 이
패턴에 관한 통찰력있는 논평을 적었습니다.
이 토론을 더 진행시키고 매력적인 정보의 표현과 학습으로 두뇌를 자극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재미와 미적 매력을 생각하십시오. 이것은 오랫동안 디자인의 중요한 특성으로 제안하지만 여전히 데이터 시각화 분야 내에서 이러한 분열 문제로 존재했습니다. 저는 최근 이 분야에서 전통적인 당파가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되었다는 느낌이 있다고 말한 반면, 저는 조화보다 차이가 아직도 있다고 느낍니다. 실제로도 틀림없이 공존보다 차이가 더 많습니다. 이 분야가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지만 성숙해야하며, 이러한 결함과 의견 충돌이 우리를 비판 받게하는 것입니다. 그것의 대부분은 소중하고 건전한 논쟁이지만,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것이 합당하고 접근할 수 있게 유지되는지 확인해야합니다.
성숙한 비판
제 강의의 가장 중요한 점은 시각화 작품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관한 더 원칙에 입각한 평가를 그 사람들이 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강의는 시각화 과정과 프로젝트를 둘러싼 의도와 변수들을 이해하도록 충고하였습니다. 표면적인 "취향" 반응에서 결론을 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시각화의 품질과 효율성 평가에 법의학 접근을 하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시각화의 해부학 레이어를 통해 박피와 디자이너의 마음에 자신을 투입하도록 했습니다.
우리가 평가하는 작품은 무한한 시간, 무한한 자원과 무한한 능력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같은 조건에서 더 잘 할 수 있었을까요?
심하게 말해서는, 시각화에 대해 공부를 하면 자유로운 관측과 시각화와 인포그래픽에 관한 순수한 시각이 사라지는 위험을 느낍니다. 시각화에 관한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들은 작품을 평가할 때는 다양한 렌즈와 분석의 깊이의 저주가 없습니다.
하지만 비평가가 온다고 해도 걱정 안해도 됩니다. 그들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평가할 것입니다. 작품의 디자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한, 압력, 제약과 방해에 대한 성숙하고 실용적인 관용과 이해가 있습니다.
이 수업을 통한 경험들은 비평가로서 제가 너무 쉽게, 너무 빨리, 너무 짜게 시각화 작품을 평가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Posavec의 관찰의 본질이었습니다. 반쯤 비어있는 유리 잔을 보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것은 사소한 결점을 보고 이 결함을 증폭하는 것 같습니다.
산티아고 오티즈의 최근의 트위터 글은 종종 다양한 시각화 방법과 접근 방법에 대해 존재하는 비판의 유형을 특성화하여 이 아이디어를 강조합니다.
Santiago Oriz(@moebio) : 이 운송기관은 말보다 느리지만 바다를 건너거나 날 수 없습니다. 큰 고속도로에서 사용하면 매우 위험합니다. infovisual.info/05/img_en/033%…
Ortiz가 말한 건 바로:
이러한 관찰은 교육과정 동안 여러 상황에서 질문을 많이 하게 만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각화를 이해하고 완벽하게 만드는 투쟁에 좌절감을 표현하였습니다. 나아가, 그들은 올바른 방법와 시각화 디자인에 접근하는 길을 잘못인지 판단에 대해 스스로 확신에 명확 수립의 어려움을 인정합니다.
이 분야에 입문할 때, 당신은 무엇이 좋은 작품이지에 대한 정보 없이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본능입니다. 그러나, 주요 기사의 영향과 소셜미디어에 노출을 통해 당신은 빨리 그리고 명확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진실은 이렇습니다: 신념을 선명하게 개발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것이 순전히 취향에 관한 것이라면 그것은 쉬울 것입니다. 음악, 미술이나 영화 같은 것들에 훨씬 더 취향에 대해 정하기 쉬운 이유입니다. "그것이 감동적이였나요?"는 쉽게 반응하여 판단의 선명도를 예/아니오 형식에 도착할 수 있게 해주는 아주 개방적이지만 적절한 질문입니다.
저는 최근 제가 좋아하는 시각화에 대한 글 하나를 썼습니다. 이 글에서 저는 스타일, 접근 방법, 주제, 기술 혹은 원리에 대해 훨씬 덜 이야기했고, 대신 더 많은 것을 알려주는 시각화에 집중했습니다. 그건 제 신념이지만 확실한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한참 걸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한 때 제가 싫어하던 것을 지금은 좋아하게 되는 것을 겪었습니다.
이 신념은 지식에 의해, 다른 학문과 방법에 대한 노출에 의해, 무엇보다 시각화가 담는 문제의 상황에서 효과적인 시각화 방법을 만들어 내는 것을 이해함으로서 알게 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것은 잘 하기 어려운 학문입니다.
마지막 생각
우리의 시각화 비평의 균형, 공정성, 사실성은 개선되어야 합니다.
"전문가"의 광범위한 영향을 주고 싶어하는 욕망은 우리의 창조성의 향상을 평가하는 방법으로 더욱 성숙해야하고 우리의 감성과 일치해야합니다. 더 나아가, 논평가와 비평가, 저 자신을 포함하여, 이러한 작품을 만든 다양한 상황에 대한 영리한 감상을 개발해야합니다.
창의적인 영역은 자연적으로 다양한 해석과 관점이 있을 수 있고 이런 다양한 의견은 보장되어야 합니다. 당연히, 더 열린 마음으로 평가하도록 하는 것이 비판적인 평가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또한 신비한 물건을 본 듯한 태도를 너무 많이 보이면 안됩니다. (특히 작품이 멋져 보이거나 인상적인 기술 능력을 보여 줄 때)
건설적이고 성숙한 비판을 하고 출품하는 욕망을 이해하고 있는 모든 시각화 작업의 배후 의도를 알아 내기 위해 확신과 자신감을 같고 질문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그래서 뭐?"라고 말하는 것부터, 우리는 모두 훨씬 더 배우고, 오히려 낙담보다는 격려를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이 글은 아마도 지나친 단순화를 다루는 일부 전면적인 일반화를 포함합니다. 바라건대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보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이 분야의 주인공이고 누가 시각화의 이득을 보는지… 시각화 생태계의 최고 위치에 있는 사람말고.
기본적으로 우리가 피해야 하는 것은 실수의 1%를 성공한 99% 디자인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분야에 들어오고 실력 향상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장벽을 만들고 있습니다. 저도 저의 비평에서 이러한 균형과 공평함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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